아프리카의 해방

자유에 이르는 길은 왜 그리도 먼가

피 흐르는, 끝도 없이 피가 흐르는 고문, 폭탄, 총에 맞은 아이들과 여자들. 1954년 이후로 북부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사람들이 1962년에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끝이다. 더는 계속할 수가 없다. 우린 가겠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1952~1956년에 키쿠유족의 ‘마우마우’ 궐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 그것은 원래 영국의 식민 지배 세력에 항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케냐가 자유를 찾는 과정에는 자기 진영에서 너무나 많은 배신자들이 나타났다. 진짜 배신자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배신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었다. ‘마우마우’란 영국 사람들이 경멸의 뜻으로 만들어낸 말로 ‘자기들끼리의 테러’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사망자가 1만 명이었던가, 아니면 심지어 4만 명이었던가? 어쨌든 그들은 모두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같은 기간 영국 측 사망자는 32명뿐이었다. 정확하게 헤아려서 말이다. 1963년 케냐가 독립하기까지 약 8만 명의 키쿠유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다.

서부 아프리카와 중부 아프리카의 몽상가들은 처음에는 소수의 무리였다. 그들은 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잘 말하고 쓸 줄 알았고, 그것을 잘 이용할 줄도 알았다. “이제는 독립을! 내일 우리는 USA가 된다. 곧 아프리카 합중국!”이라고 라메 은크루마는 1957년 가나에서 외쳤다.

아프리카-독립의-역사

젊은 몽상가들 뿔뿔이 흩어진 종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적대감을 넘어서, 식민 지배자들이 경멸하는 뜻으로 ‘부족’이라고 부르는 이들 사이의 적대감을 넘어서 파트리스 루뭄바는 1960년 콩고에서 선언하였다. “우리는 하나의 강력한 국민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겨우 몇 달 뒤에 그의 안경은 깨지고, 그는 화물차에 머리카락이 묶인 채 끌려갔다. 사진 속의 젊은 대통령은 놀라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뒤이어 그는 카탕가에서 고문을 당해 죽었다. 유럽의 기자들은 이렇게 보도한다. “해묵은 부족 간의 갈등으로 실패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옛날 식민지 주인인 벨기에의 분노를 샀고, 충분히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맨 먼저 온 사람들이 맨 마지막으로 떠났다. 포르투갈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리카에 있는 ‘자기들의 땅은 식민지가 아니라 포르투갈 바깥에 있는 포르투갈 영토의 일부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국방의 의무를 진 젊은 포르투갈 사람의 4분의 3이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지로 파견되었다. 검은 ‘신하들’에 맞선 전쟁이 10년 이상이나 계속되고, 마지막에는 국가 재정의 절반이나 들어갔다. 1974년에 리스본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마침내 마지막 식민주의자의 고집을 꺾었다.

남부에는 백인 거주자들의 중심지가 있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거저 주워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남아프리카의 인종 분리 백인 정부에 의해 불법적으로 점거되어 있는 예전의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 나미비아, 자본가 세실 로데스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와 남아프리카, 이곳에서는 네덜란드계 백인들이 이미 오래전에 영국 사람들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영국인들은 거의 모두가 안전을 위해서 여분의 영국 여권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네덜란드계 백인들은 이들이 ‘약골’이고 ‘진짜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네덜란드계 백인들은 자기들이 식민 지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땀은 그냥 자기들의 땅이다. 그들은 여기서 태어났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이곳에 건설한 모든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하지만 흑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은 마지막에 영국에 대해 ‘독립’을 선언한다.

먼저 로디지아의 백인들이 깨달았다. 여러 해 동안이나 피 흐르는 전쟁을 치른 다음 1980년에 그들의 지배를 끝낸 것이다. 새로운 나라는 짐바브웨라는 이름이 되었다. 새 대통령인 로버트 무가베는 민주주의와 화해를 말하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계속 대통령 자리에 남아 있으려고 했다. 20년 이상이 흐르자 이제 더는 평화롭지 않고 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그들이 우리를 인종주의자라고 욕을 할 테면 하라지!” 그들은 스스로 강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넉넉한 금과 다이아몬드를 가졌다. 흑인 해방 전사들은 모조리 감옥에 갇히거나 망명하거나 살해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세계가 무너졌다. 소련이 붕괴되고 아프리카에서도 힘이 이동하였다.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1990년에, 백인의 경제적 특권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정치적인 차원에서 흑백 분리를 없애는 길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민주주의와 화해를 말하고 정말로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는 영원히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민주주의와 화해를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숨을 돌리기 위한 휴식.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행되었다. 착취와 노예 매매와 식민지의 500년이 흐른 다음 겨우 50년 만에 모든 것을 갑자기 정상으로 만들어야 하다니. 웃기는 일이다. 자유에 이르는 길은 멀다. 역사의 발전이 500년 이상이나 억지로 중단되었다. 대체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까?

‘옛날 아프리카 전통에서 시작하라고? 말이야 멋지지만 대체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노인의 말을 듣는 건가? 헛소리하는 사람의 말을? 아니면 남자들 말을? 한때 그것이 전통이었다는 이유로 여전히 여자를 억누르고 그들의 사지를 절단하고 괴롭히는 남자들? 대체 그것은 어떤 전통이어야만 하나? 동부에 있는 마사이족의 전통인가, 남부에 있는 코이코이나 산족의 전통인가, 중앙 아프리카에 있는 ‘피그미’의 전통인가, 아니면 북부에 있는 베르베르의 전통인가?

한 발자국 거리를 두어보자. 사막으로 또는 빽빽한 숲 속으로 또는 높은 산으로 달려가 침묵하자. 조용히 있자.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마침내 안개가 사라지고 나서 시야에 뭔가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무엇이 보이지?

수백만, 수천만, 수억의 어린이와 청소년들, 여자와 남자들, 이념과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 기다리고 굶주리고 어딘가 수용소에 웅크리고 있거나 여러 주 동안이나 먼지 자욱한 길을 걷는, 언제나 어딘가 훨씬 더 고약한 곳에서 떠나 돌아다니는 사람들, 아무도 필요로 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가난에 찌들어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일을 하려고 한다. 어디에나 할 일이 많다. 사막에는 물을 끌어들여 관개를 해야 하고, 지하자원은 땅에서 캐내어 가공되어야 하며, 비옥한 땅은 경작되어야 하고, 태양은 이용되어야 한다. 아프리카의 태양. 그것은 아주 많이 내리다. 많은 나라들에서 하루 열 시간씩 1년 내내 내리쬔다. 그런데도 에너지가 충분치 못하다고?

위대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좋다. 여기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저기서도 작동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귀를 기울이고 함께 생각할 경우에 말이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작은 문제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래야만 당신은 강해지고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아니다.

다시 안개가 덮이면 인내심을 보일 것. 당신 자신에 대해서(가장 어려운 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안개가 걷히면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또는 무엇이 거기에 책임이 있는지를 당신이 이해하게 된다면. 생각은 독립적일 수 있다. 다르게 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에게서 독립적이고 또 독립적으로 남는다. 전보다 더욱 많이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그리고 온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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